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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78 Behind the scene] 실미도,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할 때

인천영상위원회 2020-10-08 조회수   37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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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할 때

 

 

 

<리스본행 야간열차>, <미드나잇 인 파리>,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로마의 휴일>,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위 영화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영화 제목에 지명이 포함되어 있고 제목을 듣는 순간 해당 도시의 서정적인 풍경들이 머릿속을 채운다. 그렇다면 <곡성>, <해운대>, <곤지암>, <밀양>, <목포는 항구다>, <국제시장>은 어떨까. 아쉽게도 앞서 열거한 영화의 제목들만큼 퍽 서정적인 느낌은 아니지만, 모두 내로라하는 흥행성적을 올렸던 한국 영화들이며, 해당 지명의 인상에 영화가 부인할 수 없는 영향력을 끼쳤던 작품들이다. 이는 하나의 작품이 크게는 수백만명이 생활하는 도시 전체의 이미지를 좌지우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물론 이 장소의 이미지가 해당 영화만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맨체스터하면 축구팀, 곤지암하면 국밥을 먼저 떠올리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고, 다른 영화의 지명들 역시 주거지역 혹은 관광지로서 영화를 빼고서도 자신들만의 색깔을 아낌없이 뽐내고 있다. 곡성군의 경우 <곡성>으로 급격히 상승한 인지도를 곡성군 본연의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관광수요로 연결시키고자 지자체에서 부단히도 노력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장황하게 이런저런 도시의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인천의 지명이 들어간 영화 가운데 가장 흥행한 영화, <실미도>와 배경이 되는 동명의 섬 ‘실미도’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이다.

 

 

▲ 영화 실미도 스틸컷

 

 앞서 설명한 다른 지명들과 달리, ‘실미도’라는 지명을 들었을 때 우리 모두의 머릿속을 스치는 인상은 백이면 백, 명대사 “비겁한 변명입니다”의 음성지원과 함께 그려지는 영화 <실미도>의 장면들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지명들이야 여행을 가거나 살아본 이들이 많은 곳이지만 실미도는 영화가 아니었다면 대부분 들어볼 일조차 없는 아주 작은 무인도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한국 영화사에 있어서 영화 <실미도>는 ‘최초의 천만관객 달성’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인지도나 위상에 있어서 지명으로의 실미도와 영화 <실미도>의 극명한 차이는 기실 당연한 것이다. 필자 역시 개봉 당시 영화 <실미도>를 극장에서 관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평소 문화생활에 큰 관심을 두지 않던 아버지였지만 <실미도>만큼은 함께 보자고 먼저 여쭤오셨고, 당시 관람연령이 되지 않았던 필자는 ‘보호자 지도 하’라는 멋진 명분으로 당당히 극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하필 아버지 옆에 앉아 갑작스런 겁탈 장면을 마주했던 기억이 아직도 퍽 민망하면서도 충격적으로 남아있기도 하고, 영화를 본 후 한동안은 멋모르고 영화에 나온 북한 군가를 흥얼거렸던 기억도 있다. 이외에도 17년 전에 본 영화임에도 장면 장면이 선명히 남아있는 것을 보면 <실미도>는 어린 시절 필자에게도 꽤나 큰 인상을 남겨준 영화임에 틀림없다.

 

▲ 2019년, 실미도의 해안가

 

영화의 내용 때문이라도 영화 <실미도>의 배경이 된 실미도가 인천 어딘가에 위치한 섬이라는 걸 아는 이들은 더러 있지만, 정확히 어디에 위치한 섬인지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실미도는 인천공항과 을왕리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영종도 남단, 다리를 통해 육로로 이어진 섬 무의도의 북서쪽에 위치했다. 무의도에서 실미도는 배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물때가 맞을 때면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지는 바닷길 사이를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물론 무의도와 영종도를 잇는 다리가 개통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옛날 684부대가 주둔하던 당시에는 영종도와 인천 본토를 잇는 다리조차 없었다지만, 지금은 ‘섬 속의 섬 속의 섬’임에도 육로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바닷길을 따라 들어가는 실미도는 한두 시간이면 충분히 섬을 둘러보고 나올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섬이다. 무인도이기 때문에 특별한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기 보다는 그저 자연 그대로의 경관만이 기다리고 있다. 실미도가 실제 영화 <실미도>의 촬영지였음에도 의외로 실미도에는 영화와 관련한, 혹은 실제 684부대와 관련한 흔적들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영화 세트의 경우 촬영 이후 모두 철거되었고, 지금은 그저 여기가 영화의 배경이었음을 알리는 낡은 표지판 정도가 남아있을 뿐이다. 이 표지판을 제외하고 본다면 이곳은 여느 섬들과 다를 바 없는 자연 그대로의 평범한 섬이다.

 

50여 년 전의 냉전 이데올로기는 고요했던 섬을 ‘전투병기 양성소’로 탈바꿈시켰다. 역사 속에서 잊혀질 뻔한 이야기는 20세기 말 소설로, 그리고 21세기 초에는 흥행 영화로 재생산되며 이후 20년 가까이 대중들에게 각인되었다. 그러나 사실 그 이전 수백, 수천년 동안 실미도는 이러한 이야기와 무관한 섬이었다. 실미도의 오랜 주인은 군인들이 아닌 들풀과 바닷바람과 넘실대는 파도였다. 그렇기에 이제는 실미도에도 영화 <실미도>의 색깔을 넘는 새로운 상상력을 더해줄 시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684부대가 실미도에 주둔했던 시간은 3년 남짓이었다. 기나긴 섬의 역사가 이 3년의 이야기로만 설명된다는 것은 조금은 아쉬운 일이기도 하다. 하루 두 차례 물때가 찾아오면 길이 열리듯이 언젠가는 실미도에 새로운 옷을 입혀줄 타이밍이 찾아오리라. 그 옷은 자연의 이야기일수도, 혹은 로맨스라거나 SF 장르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되었든 실미도란 지명을 듣고 영화 <실미도> 이외의 무언가를 떠올리게 만들어줄 이는 과연 누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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