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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57 IFC Editorial] 사과는 쉬워요?!

인천영상위원회 2018-12-27 조회수   38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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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쉬워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새해 벽두 친히 부산에 있는 영화진흥위원회를 찾아, 지난 정부 아래서 벌어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해 영화계와 영화진흥위원회에 사과했다. 장관의 이번 사과에 이르기까지 영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여러 번의 사과가 있었다. 지난해 4월 오석근 영진위 위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고, 일반 시민들은 잘 알고 있지 못하지만 2017년 봄에도 다음연도 사업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영진위 직원들이 영화계 인사들에게 사과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 사이 오거돈 부산시장이 블랙리스트 탄압의 대표사례라 할 수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에 대해 사과한 바도 있다. 말하자면 지난 1~2년간은 사과가 풍년인 해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숱한 사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계의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사과받고 위로받지 못했다고 느끼고 있다. 왜 그런가?

 

많은 문화예술인은 지난해 9월 문화부의 블랙리스트 관련 최종 조치 결과를 듣고 경악했다. 앞서 1년 가까이 진행됐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100명이 넘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에 대한 책임을 묻도록 문체부에 권고했다. 하지만 문체부의 결정은, 7명에 대한 수사 의뢰, 12명에 대한 주의처분이 전부였다. 실질적으로 징계를 받은 사람이 전혀 없는 것과 다름없다. 수만 명의 문화예술인이 블랙리스트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보았고,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던 사건에 대해 징계 0이라니. 실망과 격분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초에 있던 문체부 장관의 사과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영화계에 대한 사과인데 정작 영화인 앞에서 하지 않았고, 영진위는 블랙리스트 작동의 손발 역할을 했는데 그 공모자들에게 사과했다. 물론 블랙리스트 탄압에 가담하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며 힘든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힘없는 일개 직원이 정권 차원의 압박 아래서 가담하기 힘든 사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문화예술의 본령을 짓밟고 헌법을 짓밟은 행위는 어떤 이유에서든 용납될 수 없다. 최근 영진위가 문체부보다는 다소 수위가 높은 징계 결과를 내놓았지만, 대부분의 영화인은 직접적인 징계 대상자들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직원들이 소극적 협조자 내지 방관자였을 것이란 것을 안다. 그런 그들에게 사과라니.

 

묻지 않을 수 없다. 큰 죄와 작은 죄의 구분은 어떻게 하는가? 적극적 주동자보다 수동적 공모 내지 가담자들은, 그들도 일종의 피해자들이므로 그 죄에 대해 면책받을 수 있는가? 권력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면, 세상에 어쩔 수 없지 않은 죄들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그저 과거를 덮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오래된 진리이다. 친일파의 후예들이 권력의 요직을 차지해 일본제국주의 범죄를 흐리게 하도록 집요하게 도모하는 건 반민특위가 좌절했기 때문이고, 수백 명을 학살하고 권력을 찬탈한 자가 그토록 떳떳한 것은 너무도 쉽게 사면을 받았기 때문이다. 국가의 기강을 잡고 정의를 세우는 일은 추상같아야 한다. 섣부른 용서는 그릇된 학습효과를 낳는다. 한국의 근현대사의 수많은 일이 이를 증명한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이대로 묻고 갈 수 없다. 그토록 쉬운 사과,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근본은 책임을 지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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